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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존재하는가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일보 (2021.12.19.)

 

코엔(Coen) 형제가 연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늙고 무능하지만 사색적인 보안관을 등장시켜 부조리한 세상의 이치를 매우 담담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이다. '노인(老人)'의 사전적 정의는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이란 '오래된 지혜와 현명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성경 예레미야서에는 '노인은 장로나 우두머리, 지도자 등을 뜻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공자는 '70세가 되면 욕심에 기울지 않고 어떤 언행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종심(從心)'이라 했다.

 

급격한 변화가 없었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경험이나 지혜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었다. 부모 세대가 전수해준 가르침은 평생을 살면서 간직해야 할 인생의 표상인 동시에 자녀 세대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무형의 자산이었다. 그러나 당장 몇 개월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노인의 조언을 시대착오적인 잔소리로 취급하고 있고, 심지어는 노인의 존재 이유조차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작년 초에 출현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 형태의 변이를 통해 생존능력을 발전시키며 방역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고 있다. 더욱더 답답한 것은 백신접종률이 80%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망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일상으로의 회복 전망은 계속 안갯속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팬데믹 현상이 우리의 삶을 이 정도로까지 바꿀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노인들 역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처해져 있다.

 

백신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접종으로 인한 과학적 효과는 너무나 명확하다. 문제는 현재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가 여전히 5,000명 미만인 데 반해 백신접종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수는 이미 1,200명을 훌쩍 넘었다. 따라서 백신의 위험 대비 효과에 대해서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10대 청소년의 경우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증상이 없거나 위중증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백신을 맞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감염 시 치명률이 높은 노인들은 백신을 거부할 선택권조차 없는 것일까?

 

유엔(UN)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지칭한 이래 누구나 이 나이까지 살아있다면 노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노인이 되지 않으려면 병이나 사고 혹은 자살로 그 전에 사망하는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 노인은 존경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노인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것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점점 하락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오래전 한 정치인은 나이가 60이 넘으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면 안 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지고 노인의 효용가치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거치며 축적된 삶의 지혜는 여전히 필요하다.

 

'위드 코로나'란 경제회복을 위해 노인의 감염위험을 감수하는 현대판 고려장이다. 모두가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선택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인의 생명 역시 소중하다는 것과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만약 '위드 코로나'가 노인의 목숨을 담보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다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영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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