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로그인 한 후에 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2021.09.05 12:52

취미가 무엇인가요?

조회 수 2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취미가 무엇인가요?

 

박상은 온라인뉴스부 기자(국민일보 21.8.21)

 

지난겨울, 운동화를 동여매고 공원을 찾았다. 틈틈이 홈트(홈 트레이닝)를 즐기긴 했지만 운동을 위해 밖으로 나온 건 처음이었다. 대략적인 목표를 정하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집콕 생활로 억눌려 있던 숨통이 그제야 탁 하고 트이는 것 같았다. 차가운 살갗을 비집고 땀이 배어 나오자 뭐라도 해낸 것처럼 뿌듯해졌다. 계절이 물든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시간이 행복했다. 걷기는 점점 달리기로 변했고, 러닝이라는 꽤 그럴싸한 취미가 됐다. 때로는 달리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더 길지만 강박은 없다. 나만의 방식으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여긴다.

 

안전과 안정을 목표로 했던 일상이 다시 설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이 실타래를 풀듯 뒤따라왔다.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하기도 하고, 동경했던 스쿠버다이빙도 배웠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며 제약이 늘어나도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 애썼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는 평소보다 깊이 젖어 들고 그 감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성인이 되고서 멀리했던 미술에도 다시 손을 댔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대신 스케치북과 연필이라는 아날로그적인 도구를 쥐는 시간이 요즈음 나의 가장 큰 낙이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건 여가가 물리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출퇴근 시간이 사라졌고, 회식이 없어졌고, 사적인 약속이 극단적으로 줄었다. 그 시간이 쌓여 커다란 공백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배터리가 방전된 듯 집으로 돌아와 관성적으로 스마트폰을 보는 게 휴식이었다. 더 이상 그것으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빈 공간을 느꼈을 때, 나는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좋아했지?’ ‘무엇이 하고 싶지?’

 

취미를 떠올리면 종종 이력서에 취미란을 채워 넣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되곤 한다. 이 대답조차 평가의 대상이 될 거란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데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의외로 시적이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외에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이라는 뜻이 있다. 말 그대로 무언가에 마음이 가고,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 그 자체로 취미가 된다.

 

일종의 취미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엿보면 그 개념이 좀 더 명확해진다. 〇〇 작가는 특별한 기술 없이도 즐기는 취미 생활을 소개한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드는 것부터 빈티지 가구 수집, 홈베이킹, 반려식물 키우기 등 사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의 숨구멍들이 가득하다. 취미를 들춰보는 행위마저 취미가 돼버린 그는 차곡차곡 흔적을 남겼을 뿐인데 어느덧 진짜 내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어떻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또렷해졌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열심입니다를 쓴 조〇〇 작가는 취미를 서른 가지나 나열했다. 재즈댄스, 발레, 악기, 마라톤 등 활동적인 취미부터 멍 때리기, 다이어리 꾸미기, 십자수 같은 정적인 취미까지 다채롭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취미를 갖는 일이 스트레스가 될 필요는 없다. 끌리면 뛰어들고 질리면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순간을 끊임없이 발견하려는 마음,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다.

 

50만 구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 유튜버 말도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보여주며 언제나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창작의 동력을 마음에서 찾는 셈이다. 다섯 평 남짓한 자취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만의 무기를 발견했다는 그는 고독 속에서 무엇을 하는가가 결국 그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매일 규모를 키우는 확진자 수, 일상을 옭아매는 거리두기, 끝날 것 같지 않은 변이 바이러스와의 싸움 속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그 방패 중 하나가 취미라는 마법이 아닐까. ‘취미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이 당신에게 더없이 행복한 고민이 되기를 바란다. 거기서 발견한 에너지가 오늘을 살아낼 힘이 되면 좋겠다. 코로나가 있든 없든 우리의 삶은 이어져야 하고, 그 시간은 더 찬란해야 하니까.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05374&code=11171382&sid1=col&sid2=138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0 과거 시험과 수능 시험 작은의자 2021.11.17 29
89 삼락회 하늘공원 나들이(2) file 청해 2021.11.05 38
88 삼락회 하늘공원 나들이(1) file 청해 2021.11.05 30
87 우리를 과소평가하지 말자 작은의자 2021.10.29 28
86 뉴 노멀 시대의 양가감정 작은의자 2021.09.29 30
85 아프리카의 선인장 농장 청해 2021.09.20 41
84 인격, 가장 값진 선물 작은의자 2021.09.13 25
» 취미가 무엇인가요? 작은의자 2021.09.05 23
82 타인의 시선 작은의자 2021.08.20 31
81 인생정원 작은의자 2021.08.02 37
80 노인 한 명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서영아) 작은의자 2021.07.19 56
79 좌판 노인의 가득 찬 바구니 작은의자 2021.07.04 29
78 팬데믹에서 피어나는 배려심 작은의자 2021.06.29 19
77 '제일 행복한 사람'과 '아빠의 한 시간' 작은의자 2021.06.13 30
76 인간관계 돈독하게 하는 ‘미운 정’- 질서 세우는 성숙한 문화(인요한) 작은의자 2021.06.09 33
75 “고령자를 위하여” 식품에도 ‘S마크’ file 작은의자 2021.06.01 38
74 오케스트라 만들기(함신익) 작은의자 2021.05.15 30
73 내 마음부터 따뜻하게 위로해주자(윤대현) 작은의자 2021.05.03 27
72 파란마음 하얀마음(허우성) 작은의자 2021.04.22 29
71 야생화 얼레지, 7년만의 외출 작은의자 2021.04.11 4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