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풍경
김선자 길작은도서관 관장(조선일보 2021.01.21.)
눈이 왔다고 아이들이 신났다. 도서관 밖 언덕에서는 새해 아침 일찍부터 썰매를 끌고 미끄럼을 탄다. 벌써 들어왔을 아이들이 한참을 지나도 들어오지 않고 눈썰매에 빠져 있다.
자동차가 뜸한 골목길이 응달인 데다 언덕으로 오르는 모양새라 아이들이 놀기 딱 좋다. 더욱이 좁은 샛길은 달랑 할머니 두 분이 사는 데다 연세도 많아 눈길에 두문불출하시니 더할 나위없었다. 아침 내내 아이들 고함 소리가 왁자지껄 도서관까지 들려왔다.
“아이, 추워” 타닥타닥거리며 두 아이가 들어왔다. 용케 마스크는 쓰고 있지만 귀는 벌게져 있었다. 한 아이는 놀다가 마스크를 잃어버렸는지 빨간 코끝을 훌쩍였다. “마스크 어딨니?” 버릇처럼 마스크부터 찾았다.
따뜻한 도서관 안에 들어오니 점점 볼도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도대체 추운 데서 얼마나 논 거야?” 양말이 젖은 채 발자국을 찍고 다니는 녀석들을 보면서 잔소리를 했다. 장갑은 벌써 도서관 입구에다가 내팽개쳐 놓았다. 아이들 옷자락에서 떨어진 눈가루들이 바닥에서 녹아 흐물대고 있었다.
모처럼 눈다운 눈이 왔다고 아이들이 난리였다. 아니 아이들뿐인가. 도서관에 살고 있는 청년들도 난리였다. 도서관 마당이 꽁꽁 얼어서 아침 일찍 걷다가 넘어져 놓고도 자기가 만든 눈사람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흐뭇해했다.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뒷마당에서 이 와중에도 농구를 했다. 신발이 다 젖어도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입김을 내뿜으며 공을 날렸다.
남편은 어떤가? 모처럼 새벽 일찍 도서관 주변을 싸리비로 쓱쓱 쓸어놓았다고 하길래 나가 보았더니 쌓이는 눈의 속도가 빨랐는지 빗자루에 눈이 소복하였다.
마을 할머니들도 용케 앞마당이나 쓸어놓고 집 밖에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여차해서 미끄러지면 어김없이 어디 한 곳 부러지기 십상이기에 조심하는 것이다.
눈이 이렇게 소복한 날은 마을이 눈에 파묻혀서 아이들 목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리는 통에 가끔 늙은 느티나무는 졸다가 움찔 놀라 가지를 부르르 털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