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교육은 생존 수영
유소연 기자(조선일보 2021.03.27)
“우리 학교에도 금융 교육을 하러 와 주세요.”
“학생은 돈을 몰라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국금융교육학회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9~13일 실시한 설문 조사에 중·고생들은 이런 의견을 쏟아냈다. 보통 설문에서 주관식 항목은 건너뛰거나 쓰더라도 단답형에 그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 학생이 금융 교육이 꼭 필요하다며 정성스럽게 답을 썼다.
이번 설문은 우리 아이들의 금융 지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보여줬다. 68%는 ‘은행에서 파는 금융 상품은 전부 원금이 보장된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은행에서도 펀드 등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예금과 적금의 차이를 모르는 학생도 65%나 됐다. 금융 교육은 시장경제에서 선택의 자유에 따른 책임을 알게 해주는 교육이다. 라임·옵티머스 같은 금융 사고에 우리 국민이 취약한 이유는 금융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응답 학생 10명 중 2명만이 ‘금융 교육을 받아본 적 있다’고 했다. 교실에서 금융을 가르치지 않으니 학생들은 금융 문맹이나 다름없다.
미국·영국·캐나다 등은 금융 교육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친다. 미국은 50주(州) 가운데 45주에서 금융을 가르친다. 부채 관리와 소득 신고, 세금 보고서 작성법까지 교육한다. 반면 우리는 기약이 없다. 2년 전 전국 17개 시·도 청소년 대표들이 참여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기구 청소년특별회의가 교육부에 “금융 정규 교육을 의무화하자”고 제안했지만 교육부는 “현재 교육과정에도 금융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 교육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고1 통합사회 교과에서 배우는 금융은 연간 2~3시간 분량에 그친다. 고2부터는 학교에 경제 과목이 개설돼 있고 본인이 선택해야만 금융 교육을 좀 더 받을 수 있다. 경제 과목이 개설된 고교는 약 27%뿐이다.
정부 내에 금융교육협의회라는 조직이 있다.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등 6개 부처가 참여한다. 12년 전 만들어졌는데 금융을 별도의 정규 과목화하는 방안은 제대로 추진해본 적이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모든 과목 중 금융만 특별히 더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초등학생에게 생존 수영을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4연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라는 말이다.
이제라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