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가는 교가일 뿐 ‘친일 교가‘는 없다
회원 조 주 행(전. 중화고 교장)
전교조가 최근 서울지역 초·중·고교 113곳을 지목해 친일 인사가 작곡 또는 작사한 교가(校歌)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가 제창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시도교육청에서도 친일 음악인이 만든 교가를 조사하고 이를 교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교가는 대개 개교(開校)당시 능력있고 존경받는 음악인에게 의뢰해 만들어 진다. 전교조가 지목한 학교들의 경우 최소 수십 년 학교행사나 의식, 운동경기때 응원가 등으로 불리면서 재학생과 동문들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소속감을 갖게하는 ‘단합의 노래’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재학생들은 선배들의 업적을 상기하며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후배가 되려는 마음으로 가사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기며 불렀다. 동창회에서 교가를 부르는 동안 선후배는 하나가 된다. 오랜 세월 학교의 상징이 된 교가를 오늘에 와서 친일 음악인이 만들었다고 폐기한다면, 앞으로 학교에는 유서 깊은 건물이나 고목, 교훈, 역대 교장 사진 등도 남아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일방적으로 낙인찍은 친일 인명사전을 토대로 친일파로 몰고 그들이 만든 예술작품까지 배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만든 노래이기 때문에 ‘친일 교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교조가 지목한 어느 학교의 교가를 살펴 보아도 친일파가 되자는 가사를 본 적이 있는가. 교가에 친일을 하자는 내용은 있을 수 없고, 실제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럼 교사의 악보나 리듬 어느 부분이 친일인가. 그 분들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면 그 노래는 일본의 것이 아니라 당당히 우리의 것으로 품어야 한다.
전체 동문이나 재학생, 교직원, 학부모가 동의할 경우 교가를 바꿀 수 있겠지만, 친일 음악인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교가를 교체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추억이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교풍(校風)이 되어버린 교가를 폐기할 경우 그 상실감이 주는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자주 독립국가인 우리나라가 무엇이 두려워 수십 년 동안 불러온 교가를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는 패배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교가는 교가일 뿐, 친일 교가는 없다.
출처 : 조선일보 '19.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