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변호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조은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조선일보. 2020.11.02.)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4승 1패로 승리를 거두자, 전 세계 사람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능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론에서는 연일 ‘인공지능의 습격’ 등 제목을 달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으며, 향후 30년 안에 인공지능이 대체할 일자리를 줄줄이 소개하기도 했다. 변호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억 쪽에 달하는 데이터를 3초 안에 분석해낸다는 무시무시한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의 한계는 뚜렷해 보였다. 실제로 미국의 대형 로펌들은 ‘로스’라는 인공지능 변호사를 고용하여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열린 ‘알파로 경진대회’에서, 인간으로만 구성된 팀을 제치고 인공지능과 협업한 팀이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쯤 되니 두려워진다. 인공지능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데(人工), 이것이 도리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니 믿고 싶지 않다. 심지어 스티븐 호킹,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와 같은 첨단 분야 유력 인사들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가 아닐까? 플러그를 뽑거나 망치로 부수어, 기계들이 더 똑똑해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다가오는 파도를 막을 수는 없다. 제2⋅3의 물결이 우리를 향해 넘실넘실 밀려왔듯이, 네 번째 물결도 이미 인류의 발을 적신 지 오래다. 처음부터 바로 적응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결국 그 속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왔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직접 하던 일들은 무수히 대체되어 왔다. 변호사 업무만 해도 그렇다. 팔이 떨어지도록 손으로 서면을 쓰던 시절도 있었을 텐데, 오늘날 컴퓨터를 활용해 빠르게 서면을 작성할 수 있다. 두 발로 법원에 직접 찾아가 일일이 판례를 확인할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끼게 된 변호사의 에너지와 시간은 맡은 사건에 대해 더 고민하고, 더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 변호사가 나를 대신해서, 더 빠른 시간 내에 실수도 없이 관련 논문을 분석하고, 판례 수천 건을 살펴보겠다고 한다. 나아가서는 나를 대신하여 서면을 작성해주거나, 내가 작성한 서면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는 대체되는 것일까? 나의 쓸모는 다해버린 것일까?
변호사의 역할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물론 지능이 높고 아는 것이 많으며, 빠른 시간 내에 업무를 처리해내는 것도 변호사의 중요한 능력이다. 그렇지만 많은 의뢰인을 직접 만나보고 사건을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분들이 처한 힘든 상황을 마음으로 이해하며, 문제를 최선의 방향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어쩌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비록 바라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의뢰인이 미소를 띠며 돌아가셨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발전해서 똑똑해진다 하더라도, 서로 나누고 이해하는 인공‘마음’이 자라나지 않는 한 우리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찌 보면 기술의 발전은 진짜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찾아나가는 배움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인간이 해왔던 많은 것이 대체되고도 인간에게만 남아있는 특성,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인간성(人間性)’이란 단순히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누는 마음에서 발견되는 것이라는 데 인류의 미래를 걸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