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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학생 천명이 커리큘럼 천가지로 배우는 학교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조선일보, 2020.08.14.)

 

 

    학창 시절 '전교 일등'이라는 말이 주는 싸한 느낌이 있다. 똑똑한 머리로 1000명 가까이 되는 엄청난 학업 경쟁의 생태계에서 정점을 찍은 최고 포식자 느낌이 들기 때문 같다. 이러한 느낌이 만들어지는 전제 조건은 많은 학생 수다. 학창 시절 한 학년의 전교생은 1000명 정도 되었다. 거기서 일등이라 함은 상위 0.1%를 말한다. 그래서 전교 일등이란 말은 느낌이 강렬했다. 한 학년이 1000명이고 세 학년을 합치면 학생 3000명이 주 6일 등교했다. 지금도 우리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한 학년이 300명 정도다. 전교생이 1000명 가까이 되는 것이다.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거대 조직이다. 이 정도로 큰 조직은 학교 외에 회사와 군대밖에 없다.

 

근대 산업사회가 만든 학교 시스템

 

학교 규모가 큰 것은 교육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을 같은 시간에 한 장소에 모아놓고 한 번만 강의하면 선생님 숫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근대 산업사회가 만들어지면서 표준화와 대량생산이라는 정신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다.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표준화 작업을 하였고 그 사회의 모든 학생은 비슷한 표준 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렇게 한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세력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같은 학교 '동문'이라는 말은 강한 집단의식을 만든다. 그 폐단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이런 학교의 거대 규모는 코로나 시대에 커다란 약점이 되었다. 전염병 시대에 학교는 큰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가?

 

    전염병에 강한 학교를 만들려면 학교를 더 잘게 쪼갤 필요가 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온라인 강의로 가능해졌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 많은 학생이 한 장소에 모일 필요 없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미 점점 더 많은 학생이 학교 수업보다는 온라인 일타 강사 강의에 더 의존하고 있다. 학교는 더 이상 교실에서 선생님의 일방향 지식 전달 장소일 필요가 없다. 지식을 전달받는 것은 온라인 동영상 강의로 하고 선생님은 학생들을 소규모로 모아서 쌍방향으로 소통하면 된다. 선생님도 내용이 같은 수업을 반복해서 할 필요 없이 심도 있는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통해서 학생 개인의 성향과 수준에 맞게 맞춤형 수업 동영상을 제공하면 더 좋은 교육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은 오래전부터 이 방식을 적용해서 효과를 보고 있다. 온라인 강의를 적절히 이용하면 거대한 전체주의 분위기의 학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개성 있는 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 수 있다.

 

미래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텔레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플래시몹이라는 것이 생겼다. 특정 장소 특정 시간에 모여서 짧게 집단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기술은 사람의 모임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기술을 학교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수업을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가서 들을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앱으로 선생님과 5인 소규모 수업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만나면 된다. 더 이상 학생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학교로 가지 않아도 된다. 선생님이 이동하면서 동네 상가의 비어 있는 4층에 있는 위성 학교 교실에 모여서 수업하면 된다. 체육 수업도 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동네 체육 시설에서 해도 된다.

 

    내가 꿈꾸는 미래 학교는 이런 모습이다. 이번 주 금요일은 엄마 아빠가 온라인으로 재택근무를 해도 되는 날이다. 스마트폰으로 전북 고창에서 3일 동안 묵을 수 있는 집을 찾아 예약하고 목요일 저녁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엄마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회사 일을 보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새로 문 연 고창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수학, 과학, 한국사 수업을 들었다. 그날 한국사 수업은 마침 고창에서 시작된 동학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다. 토요일에 가족과 동학운동 유적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온라인 동영상 수업을 마치고 휴대전화로 예약한 고창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의 수업에 참석했다. 오후 2시에 군청 근처 운동장에 가서 고창 친구 9명과 농구 시합을 하고 체육 수업 크레디트를 얻었다. 마치고 그곳 아이들과 휴대전화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 친구들은 다음 달에 서울에 와서 같이 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듣기로 했다. 같은 시간에 고등학생인 오빠는 혼자 등산을 하고 체육 수업 크레디트를 인증받았다. 이렇게 학생 1000명이 다른 커리큘럼 1000가지를 가지는 학교가 내가 꿈꾸는 학교다. 이런 세상에 전교 일등은 없다. 모두가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학교다.

 

학교를 바꿀 기회가 왔다

 

    지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사람들의 만남도 쉽게 조직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거의 매일 전교생이 한 장소, 한 시간에 모여서 같은 선생님, 같은 아이들과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다. 2011년에 설립된 미네르바 대학은 전 세계에 흩어진 캠퍼스와 동영 상 강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런 학교는 가능했지만 우리는 변화를 거부해왔다. 코로나19는 세상을 바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전 세계가 이제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 서구에서 만든 학교 시스템을 모방하기 급급했던 어른 세대의 삶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새롭게 공립학교 시스템을 만들어서 새 시대를 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3/20200813049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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