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지우개’ 치매 늦추는 약 나왔는데... 약값 年 6200만원
美 FDA ‘아두카누맙’ 승인… 18년만에 알츠하이머 신약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유지한 기자(조선일보 2021.06.09.)
미국에서 18년 만에 알츠하이머 신약이 새로 탄생했다. 과학자들은 약효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우려했지만 환자와 제약업계는 치매 극복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기대를 걸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7일(현지 시각) 미국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젠과 일본 제약사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카누맙’이 임상시험에서 인지능력 감소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입증됐다고 판매를 승인했다. 시판 후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 4상 시험을 한다는 조건이다.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은 것은 2003년 다국적 제약사 엘러간의 메만틴 이래 처음이다. 특히 앞서 허가를 받았던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기억력 감소 증상을 완화하는 것으로 질병의 진행 자체를 늦춘 약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오젠의 치료제는 어떻게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하나
이날 뉴욕증시에서 바이오젠 주가는 장중 한때 60% 치솟는 등 강세를 보인 끝에 38.3% 오른 주당 393.85달러에 마감했다. 바이오젠은 이 약을 ‘에드유헬름’이란 이름으로 시판할 예정이다. 신약 가격은 환자당 연간 5만6000달러(약 6200만원)로 책정됐다.
◇네이처가 예견한 10대 과학뉴스 실현
알츠하이머병은 중년과 노년에 가장 흔한 치매로, 전체 치매 환자의 60~7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아두카누맙 승인 여부는 과학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도 지난해 ’2021년 주목되는 10대 과학뉴스' 중 하나로 아두카누맙 승인을 꼽았다.
아두카누맙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으로 꼽히는 베타 아밀로이드에 결합하는 항체 단백질로 만들었다. 베타 아밀로이드는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덩어리를 형성하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고 알려졌다.
FDA는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의 환자에 대한 아두카누맙 임상시험은 아직 효능에 대해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면서도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쌓이는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환자에게 효능이 있다고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어 승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환자 단체는 환영, 전문가들은 우려
미국 예일대 의대 조셉 로스 교수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번 허가는 FDA와 전반적인 보건 시스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환자와 보험사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에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FDA는 이번에 예외적인 승인을 했다. 전문가로 구성된 FDA 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아두카누맙의 승인을 반대했다. 자문위 결정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2008~2015년 FDA 신약 승인 결정의 89%가 자문위원회의 결정을 따랐다는 게 로스 교수의 설명이다.
이성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공략하는 것이 치매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학계 의견이 갈린다”고 말했다.
바이오젠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이번 신약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과거 임상시험은 중등도~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해도 뇌기능을 재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제약업계에선 치매 치료제 승인이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이 임상 2상 시험에서 초기 치매 환자의 증상 진행을 32% 늦추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릴리는 2023년 FDA 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또 다른 항체 치료제도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