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사고 내면 사실상 보험혜택 없다
새 車손해배상법 28일 시행
곽래건 기자(조선일보 2022.07.25.)
28일부터 음주운전이나 마약·약물, 무면허, 뺑소니로 자동차 사고를 냈을 때 운전자가 보험사에 내야 하는 사고 부담금이 대폭 올라간다. 사실상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준이다. 음주 사망 사고 등을 내면 사고 보상금으로만 수억원을 보험사에 물어줘야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10억원 가까운 돈을 뱉어내야 할 수도 있다. 형사 합의금과도 별개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새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 오는 28일부터 시행된다고 24일 밝혔다. 새 법은 음주나 마약·약물, 무면허, 뺑소니 차 사고에 대한 사고 부담금 한도를 대폭 올렸다. 사고 부담금이란 중대 법규를 위반하고 차 사고를 낸 사람이 자동차 보험 배상금 일부를 부담하는 것이다. 법을 어기지 말라는 경각심을 주고, 사고 예방을 위해 마련된 제도지만 그동안 한도가 높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음주 운전 기준은 운전자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인 경우다.
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의무 보험으로 보장해주던 보험금 전액을 개인이 사고 부담금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자동차 보험은 모두가 예외 없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 보험’과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는 ‘임의 보험’으로 나뉜다. 의무 보험은 차 사고를 내면 대인(對人)은 사고 1건당 1억5000만원, 대물(對物)은 2000만원까지 보상해준다. 이전까지는 음주·마약 등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내면 사고 1건당 이 금액에서 대인은 1000만원, 대물은 500만원까지 개인이 사고 부담금으로 물게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개인 사고 부담금이 대인 1억5000만원, 대물은 2000만원까지 올라간다. 의무 보험 보장 한도까지 사고 부담금 한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는 사고 1건당 한 번 사고 부담금을 물렸지만 앞으로는 대인에 대해선 피해자 각각을 따로 계산해 사고 부담금을 물린다. 같은 사고여도 사망자가 3명이라면 의무 보험 대인에서만 4억5000만원(1억5000만원×3명) 사고 부담금을 물어줘야 한다. 게다가 임의 보험에서도 사고 1건당 대인은 최대 1억원, 대물은 최대 5000만원 사고 보상금을 물어줘야 해 전체 사고 보상금은 더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음주 사고로 2명이 사망(각각 3억원 보상)하고 1명이 2억원 상당 중상을 당하고, 차량 피해 8000만원이 발생했다면, 보험사는 총 8억8000만원을 피해 보상으로 쓴다. 여기서 지금까진 가해자가 1억6500만원을 사고 부담금으로 냈지만, 28일부터는 이 부담금이 6억5000만원으로 크게 뛴다. 사고 부담금 한도가 올라간 데다 피해자 각각을 따로 계산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효과다. 또 다른 예로 마약 운전으로 4명이 사망하고, 1명 중상, 상대방 차량 피해 7000만원이 발생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보험사는 15억원5000만원가량 사고 보상을 하고 가해자에게 1억6500만원 사고 부담금을 지웠지만, 앞으로는 사고 부담금이 8억원으로 껑충 뛴다.
사고 부담금은 형사 책임과도 별개다. 음주 운전 등 중과실은 형사 처벌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형사 합의금을 줘야 할 수도 있다. 사고 부담금을 낸다고 형사 책임이나 형사 합의금을 물어줘야 할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 사고 부담금과 별개로 가해자가 더 많은 돈을 물어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지홍 국토부 자동차정책관은 “이번 조치로 전반적인 교통사고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