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번영 위한 우주 활용, ‘우주력 건설’로 패러다임 전환을
김호식 미 포틀랜드주립대 연구교수·前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조선일보 2021.12.16.)
전 세계가 우주개발 열기에 뜨겁다. 우리나라도 우주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주개발의 이점은 국가 안전보장 측면의 이익, 우주를 활용해 경제활동을 촉진할 기회,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 등 국가 발전적 요소이다. 우주개발에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우주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주개발은 국가 안보와 국가 번영에 연결되어야 한다. 세계 우주 강국은 이를 ‘우주력(Space Power) 건설’이라고 하며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해 우주공간을 이용하는 국가 능력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력이 필요하며, 우주력은 국력의 원천이자 통로가 된다.
우리나라도 ‘우주개발’에서 ‘우주력 건설’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기관 목표 달성에서 국가 목표 추구로, 우주는 ‘가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에서 ‘국가를 위해 과업을 수행하는 곳’이라는 개념으로, 현재에서 미래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우주 정책이 필요하다. 우주 정책은 바람직한 우주력 건설 목표와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에 대하여 정부가 권위를 갖고 공식적으로 결정한 기본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우주개발 활동은 우주개발진흥법의 지배를 받는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우주개발 목표, 정책, 전략, 추진 계획 등을 포함한 우주개발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한다. 미국의 우주개발이 국가 안보 전략으로부터 안보 정책, 우주 전략, 우주 정책의 흐름에 따라 추진되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우주개발 전략과 정책이 우주개발 계획과 동시에 수립되어야 하는 항목으로 취급받고 있다. 또한 우주 정책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으며 이마저 5년 주기의 수립 시점을 맞춘 적이 거의 없다. 미흡한 정책으로 인해 우주력 건설이나 우주 산업 생태계 조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많은 우주 산업 관계자들이 우주청(가칭) 신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 정부는 항공우주국(NASA)을 독립 기관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독립기관은 연방 행정 부처나 대통령실에 속하지 않는 기관으로 대통령이 기관장을 해임할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기관의 규칙이나 규정은 연방법에 준하는 권한까지도 갖는다. 대표적 독립 기관은 중앙정보국, 국립과학재단, 원자력규제위원회 등으로 최고의 전문성, 절대적 객관성, 정책의 연속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이것이 NASA를 독립 기관으로 지정한 이유다. 우리나라가 전담 기관을 설립하여 권한과 기능을 확대하더라도 이러한 속성을 부여받지 못한다면 오히려 강화된 옥상옥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를 계기로 국방 분야 우주개발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미사일 산업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국방 우주개발은 역량에 비해 제한 사항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 우주개발의 기본은 민·관·군·산·학·연 등 국가 에너지를 결집해 국제 무대에 서는 것이다. 미국은 우주개발 분야를 민간, 국가 안보, 상업 부문으로 구분하여 독립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산업 기반, 인력, 인프라 등을 상호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보 부문의 특정 우주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해 산업체의 인력, NASA의 기반 시설, 군사기지 등이 조화롭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보다 산업 규모가 훨씬 작고,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는 중복⋅중첩된 투자로는 국제 무대에 서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