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선’으로 인간성 회복 나서야
전재학(인천세원고 경향신문, 2021.07.12.)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초연결사회라 부른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최첨단 문명의 도구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듯, 그 기술과 인간의 밀접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건과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나쁜 인간성의 결과물이라면 그에 대한 경각심은 물론 근본적인 의식을 성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 되고 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전국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과 사고는 한마디로 오직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만 챙기는 이기심과 탐욕의 결과이다. 최근 광주의 건물 붕괴 사고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참사였다. 불법 다단계 철거업체들이 난무하는 현실도 어처구니없거니와 어떻게 건물을 철거하면서 중간부터 해체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건물주나 사고 관련 당사자나 허가를 내준 국가의 책임 소재를 철저히 파악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엄하게 단죄를 해본들, 누군가의 아들·딸이고 누군가의 부모·형제일 그들의 평온한 오후 일상을 순식간에 앗아간 그 아수라장의 비극을 무엇으로 되돌리며,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비극은 이런 대형 사건·사고에 그치지 않는다. 정인이 사건과 같은 아동학대에서 n번방 성착취 사건, 민간이나 군대를 막론하고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직장 내 각종 허술한 안전관리로 인한 사망 사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심한 것은 국가는 이런 사건·사고가 나면 매번 엄벌에 처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모두 쏟아지는 비난만 모면하려는 언어의 유희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밋밋한 처벌과 성긴 법의 그물망, 그리고 법망 미꾸라지들로부터 뒷돈 받고 부실을 눈감아준 데서 누군가는 내일 다치고 죽어간다.
이런 참사를 접할 때마다 미래 세대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해진다. 이는 엄격한 국가 법률의 제·개정을 넘어선다. 인간성 회복에 대한 갈증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일찍이 인간의 본성이 선(善)하다고 주장한 맹자의 가르침을 우리 청소년 교육에 다시금 소환하자고 제안한다. 즉,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자신의 잘못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수오지심(羞惡之心), 타인에게 겸손하게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서만 사람이 먼저이고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고 거짓말로 사람을 현혹하지 않으며 성범죄가 없고 아동학대와 폭력, 성착취, 혐오와 갈등 없이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마음을 간직하게 되지 않을까. 기성세대부터 먼저 맹자의 4가지 본성을 실천궁행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이를 모델로 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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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2107120300055#csidxdb03dedc051407eb02bdf669819a7c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