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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에 사람이 산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한국일보, 21.2.10)

 

열 살이 될 때까지 보모의 품에서 자란 메리는 갑작스러운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고모부의 저택으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고모를 잃은 슬픔에 아버지의 외면 속에 자란 동갑내기 콜린을 만나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랐던 메리는 동굴처럼 갖혀 있던 삶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과 벗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가치를 회복하게 된다. 특히, 아무도 돌보지 않던 비밀의 화원을 돌보며 새 생명의 소생을 체험하게 되는데 십년 동안 방안에만 갇혀 신음하던 콜린과 함께 이 화원에 나와 건강을 회복하고 고모부마저도 닫혀 있던 마음을 열게 된다. 고전 동화 '비밀의 화원' 이야기다.

 

. 우리가 살아가며 서로의 삶을 구분 짓는 요소가 바로 벽이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역사에서 최초의 벽은 동굴과 같이 자연공간에서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아주 기초적으로 삶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이었던 것이다. 그 후 벽은 지붕을 세우기 위한 기능과 함께 필요한 공간을 분할해 주고 구분 지어 주는 역할로 발전했다. 얼마나 크고 넓은 벽을 갖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갖는 공간의 규모가 정해졌으며 이는 곧 그 사람의 권위나 직분과도 연결되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칸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이 칸이란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가로의 축 즉, 보의 길이만큼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99칸을 넘을 수 없는 것이 일반인들의 집이었다. 100이라는 숫자를 넘게 칸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자는 임금만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공간을 형성하기 위한 요소로서의 벽이 오늘날 현대에 와서는 서로를 구분 짓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오늘날 아파트 중심의 삶에서 벽은 이웃과 이웃, 옆집과 옆집은 물론 아랫집과 윗집 사이에서도 벽으로 역할 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독립세대에서는 채라는 이름으로 집과 집이 떨어져 있었고 벽은 집 안에서 방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가족이 바로 붙어 있는 형국이니 과거와 달리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의 수평적인 벽이 아니라 오늘날은 사방이 다 벽인 큐빅과 같은 벽 공간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층간 소음의 문제는 물론, 벽면의 못질 소리에 민감해 지는 만큼 밀접한 물리적 거리의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건축 법규가 가리키는 벽의 두께와 재료에 대한 규정은 이러한 밀접한 현대 삶의 거리 개념을 그 두께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벽이라는 개념이 주는 물리적 의미 외에도 벽은 계층과 지위 등의 구분을 위한 역할도 하고 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평형대별로 사는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구분된다. 몇 단지 어느 브랜드에 사는가로 현대 삶의 벽이 세워진다.

 

벽이라는 개념은 필요한 용도에 충실하되 서로를 단절하는 용도로 사용되다 보면 그 단절의 벽은 두꺼워져 소통의 여백을 회복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비밀의 화원 속 고모부의 집은 웅장하고 수많은 방을 갖고 있지만 그 방은 모두 빈 방이었다. 버려진 화원이 회복되고 가족들이 마당으로 나와 함께 잃어 버렸던 것을 회복했을 때 삶의 행복도 찾아 올 수 있었다. 굳건한 벽들이 마음의 벽으로 두껍게 자리하지 않는 설날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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