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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떠났다 돌아와 보니

한은형 소설가(조선일보. 2020.9.3)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게 되었다고, 그리고 연말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연말에 아마 보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내년에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 정도의 사이인 것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이 문자를 보고 묘한 느낌에 휩싸였는데,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011로 된 번호를 썼다. 그리고 나도 011을 썼다. 011을 쓴다는 것은 2G폰을 쓴다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2012년에 처음 만났는데, 둘 다 당시에도 흔하지 않던 2G폰을 쓴다는 것에 유대감을 느꼈다. “어머, 011이야?” “안 불편해?” “이제 좀 바꾸지?”라는 말을 내가 들었던 것만큼이나 그도 들었을 테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 또한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이유와 그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기로 한 이유가 비슷할 거라고도.

 

   내가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2010년부터 2년 동안 스마트폰을 쓰다가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겠다 싶어 스마트폰을 없앴다. 그러고는 다시 2G폰을 써왔다. 내가 얼마나 중독적인 나날을 보냈는지는 몇 년 전에 출간한 책에 적기도 했다. “당시 내가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새로 나온 앱을 검색하고, 구매하고, 구동하는 것이었다. (…) 전 세계 기술자들이 쏟아내는 ‘뉴 아이템’을 ‘득템’하는 쾌락은 대단했다.”(‘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난다, 2018)

 

   전 세계의 앱들은 나를 어떻게 ‘매니지먼트’하기 시작했나? 일단 나는 날씨 앱과 옷차림을 추천해주는 앱을 확인하고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샤워를 하면서 옷차림 앱이 추천해주는 이미지에 옷장 속의 아이템을 대입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영미권 서점 앱을 구동해 문학 신간을 일별했고, 영국 요리사 나이젤라 로슨의 레시피를 참고해 장을 봤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청소를 했고, 명상 앱으로 마음을 다스렸고, 수면의 질을 측정해주는 앱을 켜고 잠을 잤다. 바이오리듬 앱과 운동 앱으로 몸도 관리하려고 했다. 나는 스마트폰이 주는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누렸던 것이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점점 뭔가가 잘못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중에도, 운전 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또 상대의 얼굴 대신 스마트폰을 보며 말하는 사람들과 길을 건너면서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을 점점 많이 보게 되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피로를 느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스마트폰을 던져버리고, 2G폰을 쓰기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자유로이 연결되던 그 상태를 중단시키기로 말이다.

 

    2012년 1월부터 2G폰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일단 가벼워서 좋았다. 핸드폰 요금이 얼마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배터리가 오래간다는 것도, 오래 써도 기계가 멀쩡하다는 것도 좋았다.(나는 이 2G 단말기를 8년 넘게 썼다.) 무엇보다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드디어 ‘탈(脫)인터넷’할 수 있었다. 딱히 급하지도 않으면서 거리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검색을 하고, 쇼핑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말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2019년 5월에 다시 스마트폰을 사러 갔다. 서비스가 종료될 때까지 2G폰을 쓰려다 마음이 바뀐 데엔 이유가 있었다. 어떤 정보통신 전문가가 웃으며 말했다. “한 작가 같은 사람들 때문에 통신사가 일 년에 얼마를 손해 보는지 알아요? 자기만 생각하고 그래.” 그러고는 통신망당 사용자 퍼센트와 할당된 주파수에 통신사가 지불하는 돈 같은 걸 수치로 읊어주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나의 평화를 소박하게 구가했을 뿐인데 ‘공공의 적’ 같은 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아주 으스스해졌던 것이다. 스마트폰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스마트폰을 쓴 지 일 년이 넘었다. 연결되지 않는 삶을 여전히 추구하지만 예상대로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 ‘카카오톡’과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앱을 안 깔았지만, 어느 날 깔지도 모른다. 재난 문자가 오고, 길찾기 서비스를 이용하고, QR코드를 찍어서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런 걸 꼭 할 수밖에 없나 싶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도 안다. 이런 삶이 스마트한 것 같지도 않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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