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의 우리를 위한 경고
경기대 사학과 교수 김기봉
『철학과 현실』 편집위원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라고 우리가 자의적으로 명명한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인 괴물로 변하는 것은 전쟁을 할 때다. 내가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을 수 있는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없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서 적은 누구인가? 코로나바이러스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그건 어디에 있는가? 타자에게 있다. "타자가 바이러스다." 타자와 2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마스크라는 작은 갑옷을 착용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마스크라는 작은 천 조각뿐, 어떤 타자도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내가 만나는 그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래 지속되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마스크 낀 사람들이 점점 '좀비'처럼 보이게 될까 두렵다.
우리는 이 긴 터널을 결국 지나갈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되어 미리 날갯짓을 해보자. 이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 여러 주장이 난무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을 만들어낸 원흉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현생 인류가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지구에 있었다. 그들은 인간보다 더 오랜 진화의 과정을 겪었지만, 인간은 오만하게도 그들을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 인류가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안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인류가 세균과 바이러스란 존재에 대해 알고 난 이후에 인류 역사를 바꾼 전염병도 그들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인류 역사란 인류와 병원체 간 투쟁의 역사라고 선언했다. 이 얼마나 인간중심주의적인 발상인가?
과학자들은 곧 이 신종 바이러스를 죽이는 백신을 발명하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회생활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태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과학의 진보는 인류를 전염병으로부터 해방시켜주지 못한다. 병원체와 인류의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대신 창과 방패의 모순의 변증법으로 날로 고도화되는 가운데, 이제는 그러한 싸움이 일어났다 하면 점점 더 큰, 보이지 않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된다. 과학은 바이러스와 세균을 정복한 게 아니라, 그들의 진화를 돕는다. 병원체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지구의 정복자로서 힘을 과시하면 할수록 전쟁은 종식되는 게 아니라 확대되는 역설이 생겨난다.
전염병의 역사로 고찰하면, 인간들에게 병 주고 약을 준 주체는 인간들 자신이다. 문제의 발단은 인간이 다른 동물을 자기들 삶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문화라는 특유의 삶의 양식을 가지면서부터다. 인간과 동물이 같은 생활공간에 놓이면서 동물을 숙주로 삼고 있었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으로도 그들 생존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했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진화의 성공으로 오늘날과 같은 신종 전염병이 계속해서 출현한다. 이런 모순의 변증법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런 모순의 변증법으로 인류의 평균수명은 더 늘어남과 동시에 바이러스 또한 함께 진화해 나간다. 결국 인간과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적대적 공존관계"로 계속 번성해 나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으로 법석을 일으킨다. 그런 와중에서 소수의 약한 사람들은 희생을 당하겠지만, 대다수는 살아남아서 문명의 이기(利器)를 누리며 살 것이다. 그렇다면 헤겔 역사철학의 통찰이 맞는가? 역사란 개인들의 비극으로 진보하는 희극이라고.
하지만 이 희극이 미래에도 계속될 것인가? 지구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인류는 지구를 숙주로 해서 살아가는 기생충에 불과한 존재는 아닌가? 언제까지 지구가 인류의 횡포를 용인할까? 기후학자들은 끊임없이 경고했다. 지구의 6번째 대멸종이 멀지 않았다고.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잡을 수 있는 백신을 연구하는 게 아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도 내리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이것이 지구가 인류라는 기생충을 박멸하겠다는 신호는 아닐까? 어쩌면 이것이 인류가 진짜 걱정해야 하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우리에게 경고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안다. 숙주인 우리가 사라지면 그들의 식민지도 없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