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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이 새겨야 할 국민의 명령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2022.3.10.)

 

- 전쟁 같던 이번 대선, 국민이 직접 연출한 것

- 여의도 정치 바깥에 있던 당선인 선택한 이유는

- 이념·진영 구태 무너뜨리고 국민만 바라보는 새 정치 세우라는 뜻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은 어떤 후보의 흠결이 덜한가를 따져야 하고, 어지간한 부정과 부도덕에 대해서는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 추악한 선거였다. 끝까지 승패를 예단할 수 없는 사생결단의 싸움이 숨막히게 이어졌다.

 

 

이제 승자는 포용하고 패자는 승복하며 갈가리 찢긴 사회를 통합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한다면 그런 수사를 구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필자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차라리 입을 다물지언정, 그런 가식적인 말은 입에 담고 싶지 않다.

 

 

국민 통합이 몇 마디 말로 될 일인가. 어제까지 상대를 향해 모든 화력을 퍼부으며 악다구니로 싸우던 이들이다. 그 아비규환 같은 사투의 포연과 피비린내가 자욱한데 어떻게 바로 안면을 바꾸어 화합 승복 운운하는가. 차라리 오늘 하루 승자는 마음껏 기쁨을 포효하고 패자는 통곡이라도 하며 분을 풀라고 말하는 게 솔직할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현실 자각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대선 승리는 저주였다. 특히 이번 선거는 과정 자체가 재앙이었다. 각 후보 진영은 선거 후 문제가 될 치명적인 폭로와 고소·고발을 주고받았다. 선거 막판엔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되는 합종연횡이 어지럽게 펼쳐졌고 대통령의 선거 개입도 노골화되었다. 코로나 확진자 대상의 사전선거 부실 관리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후보자들의 배우자들은 어디에 숨어있던 것일까. 이 모두가 감당하기 어려운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왜 이처럼 끔찍한 선거를 치른 것일까. 일본의 기자 출신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태평양 전쟁 패전 후 되뇌었다는 말이 적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바보가 된 것일까.”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 시대착오적인 양당 정치, 패거리 진영 정치가 그 이유로 제시된다. 타당한 분석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논란을 초래할 도발적 주장이지만, 필자는 이 전쟁 같은 선거를 국민이 의도적으로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선거 내내 궁금했다. 여야의 후보 선출 과정에서 정치 경륜을 놓고 보면 여당에는 이낙연과 정세균, 야당에는 홍준표와 유승민이 있었다. 실제 선거 과정에서 비전과 정책, 배우자 면에서 안철수가 단연 돋보였다. 당당한 프로 정치인의 모양새로는 심상정이 으뜸이었다. 그런데 왜 국민들은 하필 미숙하고 하자투성이인 윤석열과 이재명을 대선의 주역들로 세운 것일까?

 

흔히 여의도 정치로 통칭되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그리고 이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려는 국민의 결연한 의지와 원모심려한 지략을 빼고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 촌각을 다투는 AI 시대에 구태의연한 이념과 진영 논리에 갇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정치권, 특히 시민의 권리와 이익을 내세우며 뒤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는 운동권 정치 계급의 위선과 무능에 국민들은 질리고 또 질린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오랜 세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개혁의 권한을 스스로 쥐고 있는 이 집단을 밖에서 바꾸는 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국민은 그 대안으로 윤석열과 이재명을 선택했다. 여의도 정치에 몸 담은 적 없기에 이념과 진영에 얽매일 일 없고, 살면서 덕지덕지 묻은 때며 분노 조절이 어려운 성정 탓에 특별히 깨끗하고 선한 척할 수 없는 반()정치적 존재들을 정치 무대의 전면에 전격 소환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 후자의 경우 국민의 힘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이 반영되었지만, 기존 정치의 대척점에 있는 아웃라이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이 대선의 주연을 맡으면서 전대미문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후보자들은 자신의 거울 이미지 같은 허점투성이의 상대와 종래의 정치 문법 따위는 아랑곳 않는 난투극을 벌였다. 누구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은 이 과정에서 철벽같던 정치의 성곽이 내파(內破)되었다는 것이다. 묵시록의 아마겟돈 예언처럼 정치가 스스로를 초토화시킨 선거전의 잔해 위에서, 필자는 두려움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국민이 무서운 존재임을 다시 깨닫는다. 전 정권의 위선과 무능은 신속히 그리고 단호하게 심판되어야 한다. 구태 정치가 무너진 자리에 이념과 진영이 아닌, 국민만을 바라보는 새 정치가 세워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 통합의 길이다. 그것이 만신창이의 당선자가 새겨야 할 준엄한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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