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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치고 여행' '점 찍고 여행'을 넘어

  - 진정한 여행과 관광의 의미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조선일보, 2020.03.07.)

 

   한국 풍수의 시조가 도선이라면, 중국 풍수의 시조는 곽박(郭璞·276~324)이다. 도선이 스님이라면, 곽박은 도사 계열(도가)이다. 도가답게 곽박은 신선이 사는 곳을 흠모하는 유선시(遊仙詩)를 남겼다. "도읍지(수도)는 떠돌이 협객들의 소굴, 산림은 은둔자들이 사는 곳. 샘에 가면 맑은 물 마시고, 산에 가서는 영지버섯 캐노라"로 유선시는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에도 어디에 사는가, 즉 도시냐 시골이냐는 단순히 거주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생관의 차이였다. 곽박의 이러한 생각은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자[無爲自然·무위자연]"는 노자 사상으로 귀일된다. 노자는 "땅은 작고 사는 이가 적은[小國寡民·소국과민]" 곳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 나라들은 닭과 개가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있어도 평생 서로 오고 감이 없다." 마치 필자가 사는 산촌 앞 동네 확성기에서 이장의 공지사항이 들려도 평생 그 마을을 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랄까?

 

   노자의 '소국과민'의 땅과 곽박의 '산림'은 명당 모델의 원형이 된다. 전후좌우 사방의 산[四山]으로 둘러싸인 최소한의 공간을 삶의 기본 단위로 한다. 사산(四山)은 흔히 청룡·백호·주작·현무로 부르는 사신사(四神砂)라고도 한다. 작게는 무덤에서 마을, 그리고 크게는 도읍지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풍수가 말하는 이상적 공간 구성은 동일하였다. 예컨대 조선 한양의 경우 북악산·남산·인왕산·낙산이란 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을 말한다.

 

   이러한 초기 풍수의 이상적 공간 모델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한다. 노자가 강조하던 소국과민의 땅도 인구의 자연 증가로 포화상태가 되면, 좀 더 넓은 새로운 장소로 옮기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부족한 것을 저 땅에서 얻기도 해야 한다. 길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어려움을 풍수 고전 '탁옥부''동쪽 땅을 밟고[], 서쪽 강을 건너고[], 남쪽 교차로를 지나고[], 북쪽 목적지를 가보는[] 노고'라고 표현하였다. 산 넘고 물 건너는 고생, 즉 등섭지로(登涉之勞)의 다른 표현이다. 등섭지로의 대상은 '자연'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문명)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행위가 다름 아닌 여행과 관광이다. 무게 중심이 자연에서 인위적인 것[문명·문화]으로 기운다. 어원적으로 여행이란 '다른 지방으로 가서 그곳의 경치와 사물을 보는 것[]'이며, 관광은 '그 나라[]의 빛나는 것[·문화]을 보는 것'이다. 진지함과 배움의 자세로 다른 지방을 찾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손님 대접'을 받는다.

 

   괴테는 20개월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질풍노도를 극복하고 원숙한 고전주의 문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여러 대상(자연·지형지세·인심·문화)을 존경의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여행 목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관광과 여행 행태는 '닥치고 여행'이나 '점 찍기(메뚜기) 여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도시(나라)에서 저 도시(나라)를 점 찍듯 움직이는 것은 여행도 아니고 관광도 아니다. 그것은 '지식도 자본처럼 축적할 수 있고, 여행도 자본처럼 축적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의 귀태(鬼胎)이다. 외화 낭비와 '오버 투어리 즘'을 낳을 뿐이다. 자국에도 타국에도 기여하는 바가 없다. 손님 대접도 받지 못한다. 코로나19 창궐도 그 악성 종양이다. 문명이 아닌 자연, 도시가 아닌 산림, 대국이 아닌 소국, 명승지가 아닌 이름 없는 산천, 물질이 아닌 정신세계로 관광(여행)을 전환시킬 시점이다. 문명[人爲]보다 자연[無爲], 풍수가 지향하는 세계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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