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십니까(노인돌봄서비스)
송현숙 논설위원(경향신문, 2019.10.16.)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 보니 부쩍 노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머지않은 내 문제로 여겨진다. 눈이 침침해지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고, 걷지도 못하게 되면 어쩌지. 자녀들에게 부담 주긴 싫은데 부부가 모두 아프면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문다. 친구들을 만나도 부모님 안부를 서로 묻다가 자연스럽게 노후 걱정으로 화제가 옮겨간다. 준비되지 않은 ‘100세 시대’는 기대보다는 불안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최근 노후와 관련된 몇 가지 뉴스에 유독 눈길이 갔다. 노인돌봄서비스가 내년부터는 개별 노인의 욕구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로 개편된다는 것, 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협업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주거정책’ 토론회 개최, 각 지역의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 소식 등이다.
‘AIP(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는 세계 노인복지 정책의 보편적 흐름이다.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무조건 시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최대한 살던 집에서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삶의 주도권을 노인 스스로 갖게 하자는 철학이 깔려 있다. 앞에서 열거한 일련의 기사들을 보면 우리 사회도 이 방향으로 복지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노인들의 절반 이상(57.6%)이 ‘거동이 불편해도 현재 살고 있는 집에 계속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돌봄을 받기 힘들어 많은 노인들이 요양시설에서 상당기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체 노인의 23.7%만이 자녀와 같이 살고 있고, 자녀와 같이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15.2%뿐이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은 가족과 자녀의 부양의무로 여겨지던 노인 돌봄에 국가가 본격적으로 나선 획기적인 변화였다. 가족 부담은 상당부분 덜었지만, 운영 대부분을 민간에 맡기고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노인들이 원하는 서비스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획일적이고 비용을 줄인 값싼 돌봄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가족의 손을 떠난 돌봄엔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으니, 몸이 불편하면 내키지 않아도 시설부터 찾게 된다.
생각을 한번 바꿔보자.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보험으로 지급하는 하루 3시간의 방문 요양서비스 대신, 하루 3끼 식사를 배달해 주고, 한 달에 2번 병원 동행, 청소는 1주일에 2번처럼, 개인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상담하고 지원받을 수 있다면? 가까운 곳에서 공공의료를 받을 수 있고, 식사와 세탁, 청소 등 기본적인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주지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묵을 수 있다면?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우리 노후의 삶은 훨씬 달라지지 않을까. 상상이 아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각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민간·공공의 노인 복지 서비스들이다.
외국에선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한국에선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방향만 설정했을 뿐이다. 어떤 지원을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지,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조차 막막한 상황이다. 상담의 지역거점부터 빨리 구축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들의 수요를 읽은 고급 요양원, 고급 실버타운 등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의료비, 노후생활비로 적어도 몇 억원이 든다고, 첫 월급을 받으면서부터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험사들은 협박에 가까운 추산치를 들이민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어른대는 노후의 그림자 속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난해 14.8%를 차지했고, 2026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20%)인 초고령사회가 예측된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도 내년부턴 고령인구(65세 이상)로 진입한다. 최근 통계청 발표를 보면 1인 가구 비중은 점차 늘어 2047년 37.3%로 최다가 된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가족이 몇 명이든 노인문제는 우리 모두의 미래다. 고급 실버타운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들을 양질의 보편적 서비스로 끌어올 방법을, 우리가 보내고 싶은 노후를 하루라도 빨리 논의해야 한다.
기력이 쇠하고 병들어도 어딘가에 ‘맡겨지는 대상’이 아니라, ‘품위를 갖춘 인간’으로(<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중), 내가 살던 곳에서 살던 방식대로 나이 들고 싶다. ‘돈이 효자’가 되어선 안된다. 누군가의 지갑을 불리는 각자도생의 시장이 아닌, 우리의 노후를 튼튼히 하는 지역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