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동네북’이 된 유교 문화
윤희영 에디터(조선일보 2021.01.12.)
유교(儒敎)를 종교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선 어느 종교보다도 막대한 정신적 영향력을 미쳐왔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환골탈태했다지만, 아직도 한국인들 머릿속에는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배어있다.
일부에선 현대 한국의 발전을 아직 남아있는 유교 영향 덕으로 돌리기도 한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학생들의 뛰어난 학습 능력부터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코로나19 제어에 이르기까지 유교 문화 덕을 본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정반대의 극단적 평가를 하고 있다. 권위주의, 성차별, 직장 내의 숨 막히는 계급·서열, 고질적인 부정부패 등 온갖 병폐가 유교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탓한다.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사회의 유교 문화가 점차 ‘동네북’이 돼 가고 있다고 전했다. 성차별에서 갑질 행패에 이르는 모든 사회악의 원인으로 지탄받는 원흉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과거 한국의 독재 정권들이 효심과 충성심이라는 유교 덕목들을 악용해 권위주의적 정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견을 인용하기도 했다. 유교 사상을 주입해 국민으로 하여금 순종적이고 충성스러운 조직원이 되게끔 세뇌했고, 그 영향으로 지금도 성실한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윗사람에 대한 존중 등을 국민적 특성이자 덕행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길거리에서 어느 낯선 사람에게 물어봐도 자신이 유교주의자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자식, 형제자매, 직원으로서 어떤 도리를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사회적 잠재의식 속에 지켜져오던 이런 사회 규범들도 개인의 자유, 각자의 자율성, 양성 평등 등 현대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