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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안락사 시켜달라” 65세 되면 절규하는 중증 장애노인

 

조유미 기자(조선일보, 2020.11.05.)

 

      - 노인 장기요양 급여대상자로 바뀌며, 돌봄지원 4시간으로 되레 줄어

 

    강원도 춘천에 사는 김모(65)씨는 매일 아침 7시 잠자리에서 눈을 뜬다. 그러고는 2시간가량 불을 켜지도, 세수를 하지도 않고 누워 있는다. 목이 말라도 참는다. 밤새워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는 것도 일상이다. 그는 중증 장애인이다. 두 살 때 뇌병변을 앓은 후유증으로 두 다리와 왼쪽 손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혼자서 휠체어에 탈 수도 없다. 김씨의 하루는 오전 930돌보미라 불리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출근해 그를 거실 소파에 앉힌 뒤에야 시작된다.

 

김씨의 유일한 취미는 역사책 읽기다. 오후 1~2시쯤 돌보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도서관으로 나갔다가 책을 읽고 돌아오면, 어느덧 돌보미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된다. 돌보미가 떠나는 이 시각, 김씨의 불안은 시작된다. “불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루에도 수십 번 끔찍한 생각을 한다고 했다. 3~4년 전쯤이었다. 오전 2시 김씨가 사는 아파트 11층 화재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주변엔 김씨를 도와줄 돌보미도, 지인도 없었다. 김씨는 꼼짝없이 죽는구나생각에 30분가량을 두려움에 떨었다고 했다. 다행히 경보기는 오작동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김씨는 폐쇄된 공간에 있으면 호흡이 곤란하고 답답해지는 폐소공포증이 생겼다.

 

   그런 김씨가 오는 1765세 생일을 앞두고 또다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생일이 지나면 하루 최대 11시간씩 지원을 받아왔던 돌봄 서비스가, 최대 4시간으로 줄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돌봄 서비스를 받던 장애인은 만 65세가 되면, ‘노인 요양 서비스의 대상자인지를 판정받아야 한다. 합격하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장애인 돌봄 서비스는 중단되고 노인 요양 서비스를 받게 된다.

 

   여기서 역설(逆說)이 발생한다. 원래 받던 돌봄 서비스는 장애 정도에 따라 하루 최대 24시간까지 가능하지만, 노인 요양 서비스 대상자가 되면 하루 최대 약 4시간에 불과하다. 장애인 입장에선 탈락을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판정의 기준은 혼자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가. 전신 마비, 중증 정신 지체, 팔다리 절단 등 중증 장애인일수록 불행한 합격자가 될 수밖에 없다. ‘탈락해 장애인 돌봄 서비스를 그대로 받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많고 청각장애인도 일부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은 집 안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는 등 일상생활은 가능하다는 판단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원래부터 돌봄 서비스를 하루 1~2시간 정도밖에 받지 않는 경우도 다수다.

 

    복지부에 따르면, 8월 기준 돌보미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모두 86370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만 65세가 돼 노인 요양 대상자로 전환(411)되면서 돌봄 서비스 시간이 줄어든 장애인은 275명이다. 300명 안팎이라면 숫자가 많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증 장애인 입장에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느냐, 마느냐는 인권의 문제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 돌봄 서비스는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며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해 달라고 했다.

 

   지난달 20일 광주광역시 시청사 앞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아 차라리 나를 안락사시켜 달라고 소리쳤다. 전씨는 2009년 철봉 운동을 하다가 목뼈를 크게 다쳤다. 전신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목과 양팔의 일부뿐이다. 그는 지난달 31일로 만 65세가 됐다. 그전까지는 활동 지원사 2명으로부터 각 8시간씩 하루 16시간 도움을 받았으나, 이달 1일부터는 하루 3시간(81시간)으로 줄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생리 활동을 혼자 해결하기도 어렵다. 그가 차라리 안락사를이라고 외치는 이유다.

 

   지난 7월 김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이 만 65세라는 이유로 돌봄 시간이 줄어들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내용의 진정을 냈다. 인권위도 현행법은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할 65세 이상 장애인에게 오히려 지원이 축소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법이 개정될 때까지 지자체가 추가 지원을 해야 한다며 지자체에 긴급 구제를 권고했다. 하지만 몇몇 지자체를 제외하고는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지원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21대 국회 출범 후 장애인이 65세가 되더라도 자신이 원하면 계속 기존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총 5건의 개정안이 올라왔지만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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