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자료

자체 연수자료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농업대국·자원부국인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소련 부활’을 향한 디딤돌

과거 레닌 우크라이나 잃으면 러시아는 머리를 잃는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주간동아 2022-02-05)

 

우크라이나는 예부터 유럽의 빵 바구니(bread basket of Europe)’로 불려왔다. 국토 대부분이 검은 흙’(黑土·흑토)을 뜻하는 체르노젬(chernozem)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흑토는 비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영양분이 많아 씨앗만 뿌리면 각종 곡물이 잘 자란다. 우크라이나 흑토지대는 북미 프레리(Prairie), 남미 팜파스(Pampas)와 더불어 세계 3대 곡창으로 유명하다.

 

<소련 수탈 겪은 비극의 역사>

현재 전 세계 밀 수출의 10%, 옥수수 수출의 18%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의 식량기지였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1932~1933홀로도모르(Holodomor: 기아에 의한 사망을 의미하는 우크라이나어) 비극을 겪어야 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식량을 징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련의 식량 부족을 해결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독립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붉은 완장을 찬 공산당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휩쓸며 식량을 약탈해 갔다. 저항하는 농민은 즉결 처형됐다. 식량을 빼앗긴 농민들은 굶어 죽었다. 이런 사실은 비밀로 은폐돼오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인 1991년 전모가 드러났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당시 아사한 우크라이나인이 700~1000만 명에 달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자원부국이다. 철광석(매장량 세계 1)과 석탄(세계 6)을 비롯해 망간, 티타늄, 니켈, 흑연 등 드미트리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에 나오는 자원이 대거 매장돼 있다. 이 때문에 소련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군수 및 중공업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의 과학기술이 발전했다는 점도 큰 요인이 됐다. 유대인이 많이 거주했기 때문이다. 소련 시절 군사력 절반이 우크라이나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들은 군수산업 발전에 상당히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은 소련 시절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우크라이나인과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유대인 700만 명을 집단학살했다. 또 독일과 싸우다 전사한 소련군 1100만 명 가운데 27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징집된 우크라이나인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원전 폭발 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86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130떨어진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해 수만 명이 사망하거나 방사능에 노출됐다.

 

과거 여러 비극을 겪은 우크라이나가 형제 국가인 러시아의 침공 위협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러시아와 같은 뿌리다. 우크라이나의 원조인 키예프 공국은 882년 동슬라브 민족이 세운 첫 나라. 북부 발트해에서부터 남부 흑해까지 이르는 지역을 통치한 키예프 공국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크게 융성하다 1240년 몽골족 침략으로 멸망했다.

 

<나토 가입 추진, 러시아 안보 위협 간주>

키예프 공국 귀족과 백성은 몽골 지배를 피해 모스크바 인근으로 이주한 뒤 1283년 모스크바 공국을 세웠다. 키예프 공국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러시아, 벨라루스 3국의 모태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스크바 공국은 이후 제정 러시아를 거쳐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소련)이 됐다. 소련은 19911226일 붕괴되고 러시아가 이를 승계했다.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폴란드 등의 지배를 받아오다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됐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때 잠시 독립하기는 했으나 1922년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 일원이 됐다. 이후 옛 소련 붕괴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을 틈타 1991824일 독립했다.

 

현재 러시아 인구의 20%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친인척 관계. 볼셰비키 혁명 주역인 레온 트로츠키 전 소련 외상,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돈바스(도네츠크와 루간스크주를 부르는 명칭)를 제외하고 국민 대부분은 러시아에 반감을 보여왔다. ‘형님인 러시아가 동생인 우크라이나를 핍박하고 사사건건 내정에 간섭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는 물론이고, 러시아 국민도 우크라이나를 자국 영토로 간주해왔다. 흐루쇼프 전 서기장이 1954년 크림반도 관할권을 우크라이나에 넘긴 것도 형제애의 발로였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종속관계를 단절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해왔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독립 이후 러시아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 등이 보장되는 서유럽 국가처럼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이런 태도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EU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말 그대로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 상황에 빠지기 때문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 함께 유럽 진출의 관문 역할을 하는 국가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과의 완충지대 격인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탄도미사일을 배치하면 러시아 모스크바를 타격하는 데 4~5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전략 요충지다.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동과 서(러시아와 유럽), 남과 북(발트해와 흑해)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 교차로에 위치한다. 유럽인에게는 동방 진출을 위한 길목이었고, 아시아 유목민에겐 유럽 침략의 통로였으며, 부동항이 없는 러시아에겐 흑해와 지중해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였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예부터 유라시아 패권 전쟁의 주요 무대였다. 더욱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옛 소련권 국가들의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강화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CSTO 회원국은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6개국이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까지 가입시켜 나토에 대항할 수 있는 2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만들려는 야심을 보여왔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부활의 전제조건”>

지경학적으로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중요하다. 러시아의 주요 수출 품목인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수송하려면 우크라이나에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러시아 경제를 먹여살리는 최대 에너지 수출시장이다.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80%는 우크라이나에 설치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돼왔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유럽 에너지 시장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옛 소련권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을 확대·강화하려는 러시아 측 구상도 좌초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 5개국을 한데 묶어 EU에 대응하는 경제공동체 구축 전략을 추진해왔다. EAEU는 그동안 상품, 자본, 노동, 서비스 등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면서 하나의 경제 동맹체 결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인구가 4300만 명으로 동유럽에서 가장 많고, 국토 면적(603700)이 한반도의 3배에 달하는 데다 농업대국이자 자원부국인 우크라이나가 EAEU에 합류하면 러시아는 옛 소련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

 

소련 붕괴를 지정학적 재앙으로 규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옛 소련의 완전한 부활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조지아 등을 다시 러시아에 편입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영방송 로시야1의 특집 다큐멘터리 러시아, 새로운 역사에 출연해 소련의 해체는 러시아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러시아 국민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소련 붕괴는 비극이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67%가 소련 붕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 말대로 소련 붕괴로 러시아 영토가 17세기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 이전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옛 소련처럼 강한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옛 소련 국가들을 자국 지배권 아래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유명한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소련 부활은 우크라이나가 그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소련을 건국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러시아는 머리를 잃는다고 말한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는 소련 부활을 위한 가장 중요한 디딤돌인 셈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25호에 실렸습니다

---------------------------------------------------------------------------

 

나토 막으려 우크라 먹겠다는 푸틴..'동진 저지선' 지정학 비극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2022. 02. 25.)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일 독일의 동쪽 지역으로는 확장하지 않는다.'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미국으로부터 구두로 약속받은 내용이다.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연례 기자회견에서 서구 사회가 1990년대 동유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토는 뻔뻔하게 다섯 번이나 우리를 속였다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다섯 번이란 1999년을 시작으로 2004·2009·2017·2020년의 나토 확장을 가리킨다.

지난 224(현지시간)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감행한 것은 무력을 써서라도 나토와 서방이 이런 약속을 지키게 만들겠다는 선포다. 나토의 동진을 막기 위한 저지선을 우크라이나에 그은 것이다.

 

<‘강대국의 화약고지정학적 비극>

 

실제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서방에 위기 해소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비무장화를 내걸었다.

옛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영토 중에서도 푸틴이 이처럼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건 지정학적 요인이 크다.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이자 흑해 연안에 자리한 요충지다. 과거부터 서구 열강은 우크라이나를 동방 진출의 교두보로, 러시아는 흑해를 거쳐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 봤다. 이 때문에 대북방전쟁, 나폴레옹전쟁, 크림전쟁, 1·2차 세계대전의 전장이 돼 '강대국의 화약고'로 불렸다미국 외교의 거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를 잃은 러시아는 유럽에서 멀어져, 더 아시아에 가까운 나라가 된다러시아가 유럽의 일부인지, 아니면 유라시아의 추방자인지 결정하는 축이 바로 우크라이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지니는 경제적 가치 또한 높다. 기름진 흑토 체르노젬으로 이뤄진 평원에서 전 세계 수출량의 20%에 이르는 밀을 수확한다. 철광석과 석탄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야심가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는 여러 모로 포기할 수 없는 땅이다.

우크라이나의 밀밭. 비옥하고 드넓은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0%를 수확한다.

 

'원래 우리땅' vs '전혀 다른 나라' 인식차

 

지난 21일 푸틴 대통령은 길고 열정적인 TV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실제 9세기 우크라이나 땅에 세워진 첫 국가인 키예프루스는 벨라루스·러시아까지 아우르는 곳이었다. 동슬라브의 종가(宗家)가 우크라이나 셈이다. 13세기 키예프루스가 몽골에 멸망한 뒤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성장한 분가(分家)가 러시아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동생의 나라로 여겨왔지만, 우크라이나는 생각이 다르다. 키예프루스 멸망 뒤에도 여러 제국에 의해 분할 점령당하며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다른 나라가 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1654년 제정 러시아 때부터 1991년 소련 해체까지 340여 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우크라이나 내에는 러시아 포비아(공포증)’마저 생겼다. 특히 1932~33년 소련의 스탈린은 농장 집단화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를 수탈, 대기근으로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홀로도모르(기아로 인한 치사)라 불리는 비극이다.

 

우크라 '정치적 무능'도 위기 자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이어 8년 만에 또 푸틴의 탱크에 짓밟히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판단 실패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국가 출범 이후 친러·친서방 정부가 교차 집권하며 양극단을 오가는 분열적 정책을 펼쳤다. 국가가 사분오열되고 경제는 추락했다. 2004년 오렌지혁명 등을 거치며 친서방 정권이 자리잡았지만, 여전히 안보는 서방에, 경제는 러시아에 의존하는 식으로 줄을 탔다.

이는 1994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미국, 영국 등과 함께 했던 핵 포기 결정(부다페스트 양해각서)마저 패착으로 귀결시켰다. 당시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는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를 조건으로 안전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인해 어느 나라도 우크라이나에 강한 안보를 제공해줄 명분을 찾지 못했다.

 

고재남 유라시아정책연구원장은 우크라이나의 현실은 강대국 사이에 낀 중간국의 정치·외교가 잘못됐을 때 치러야 할 기회비용을 보여준 극명한 사례라고 말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9 [유투브 강의] 2024년 3월 월례연수 안내 사무처장 2024.03.27 2
98 2024년 3월 월례 연수 특강 file 사무처장 2024.03.19 27
97 2023년 11월 월례연수 특강 상록수 2023.11.09 45
96 2023년 9월 월례연수 특강 한니발 2023.09.15 27
95 2023년 6월 월례연수 특강 한니발 2023.06.15 24
94 2023년 4월 월례연수 특강 한니발 2023.04.22 29
93 2023년 3월 월례연수 특강 자료 file 상록수 2023.03.16 23
92 2022년 11월 월례연수 특강 한니발 2022.11.08 30
91 2022년 9월 월례연수 특강 한니발 2022.09.16 36
90 평균 건강수명 73.1살…70대 되면 왜 갑자기 노쇠해질까 서울교육삼락회 2022.06.29 19
89 500년전 선비 뱃놀이 그린 ‘독서당계회도’… 美·日 떠돌다 귀환 file 서울교육삼락회 2022.06.23 16
88 2023년 국경일과 관공서의 공휴일 file 서울교육삼락회 2022.06.19 70
87 ■ 2022년 6월 월례연수(동영상) - 맨발 걷기 운동으로 건강관리(박문영) 상록수 2022.06.07 54
86 기업 52%가 임금피크제...회사마다 연봉삭감액·업무량 달라 혼선 서울교육삼락회 2022.05.27 22
85 북쪽까지 확장되는 나토 울타리… 유럽軍 창설 탄력 file 서울교육삼락회 2022.05.19 27
84 노화지연과 건강관리-동영상 (서울아산병원) 서울교육삼락회 2022.05.10 27
83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법 서울교육삼락회 2022.04.25 36
82 ■ 22년 4월 월례연수(동영상) : 학교폭력 피해자 구제방안 - 학교폭력·아동학대 바로 알기 - 상록수 2022.04.04 51
81 ■ '22년 3월 월례연수자료 (동영상) -알고 싶고, 알아야 할 법률 상식 - 상속 1 상록수 2022.03.08 93
» 농업대국·자원부국인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소련 부활’을 향한 디딤돌 서울교육삼락회 2022.03.06 2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 5 Next
/ 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