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밴드, 셧다운된 미국을 묶다
성호철 기자(조선일보, 2020.04.20.)
[개방성 아닌 폐쇄성이 무기… 비대면 시대, 미국서 급속 성장]
- 불청객 낄 수 없다, 리더 승인없이 제3자 참여 못해… 美3월 이용자 250만명 돌파
- 실시간 방송 갖췄지만 페이스북 라이브·줌 등 강자 많아 아직 화상회의·원격수업에서는 약세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시(市)에 있는 한 교회에서 랜돌프 니컬스 목사는 평소와 다른 설교대에 섰다. 니컬스 목사 앞에는 신도들 대신에 몇 대의 카메라만 있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설교는 실시간 동영상을 전송하는 '밴드(Band)' 앱을 통해 신도들에게 전달됐다. 지역 매체인 밀워키커뮤니티는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와 확산을 막기 위해 10명 이상 모임이 금지되면서 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지만, 이런 장벽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넘어선 교회가 생겨났다"고 보도했다.
"선생님 공지사항 떴네" -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가 밴드에 올린 글을 읽고 있다. /네이버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역 사회가 셧다운(shut down·활동 중단)된 미국에서 한국 네이버의 소셜미디어(SNS)인 밴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내 밴드의 월간 이용자(MAU)는 작년 하반기 2만~6만명씩 늘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3월에는 24만명이 급증하며 250만명을 돌파했다. 1월보다는 14% 증가했다. 네이버는 "4월엔 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져 280만~3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예상한다. 밴드의 급부상은 특히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나 가족 단위 이용자 급증에 따른 것이다.
밴드가 내세우는 철저한 '폐쇄성'이 미국 사회에서도 먹힌다는 분석이다. 네이버 안팎에서는 "향후 3~6개월간 현재와 같은 상승 바람이 이어질지가 관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6개월 내 1000만 이용자 수 고지만 밟는다면, 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줌과 같은 미국 본토의 경쟁자와 경쟁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 교회·가족 이용자 급증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지역 신문 로린버그익스체인지는 지난 6일 "스코틀랜드카운티에 있는 걸스카우트 대원들은 코로나 사태에도 흔들리지 않고, 공동으로 지역 봉사 활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걸스카우트 대원들이 밴드 앱에 가입해 각자가 집과 주변을 청소한 활동 사진을 공유했고, 리더가 이를 확인해 활동 배지를 나눠준 것이다. 이 지역 걸스카우트의 리더인 케이시 매컬룸씨는 "우리 팀은 밴드로 서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한국의 SNS 밴드가 급부상한 배경엔 폐쇄성이 있다. 미국 주요 소셜미디어인 페북이나 줌, 슬랙 등은 모두 기본적으로 모임방을 만들 때 '개방성'에 초점을 둔다. 대화방에 있는 멤버는 누구나 제3자를 초청할 수 있다. 초청받지 않아도 대화방의 인터넷 주소만 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불쑥 불청객이 들어와 불쾌한 동영상을 올리거나 전혀 상관없는 대화를 건넬 우려가 있는 것이다.
밴드는 정반대다. 가족방을 만들면 리더(방 개설자)의 승인 없이는 제3자 참여가 원천 봉쇄된다. 종교, 가족, 방과후 활동 모임, 댄스 교습소 등 특정 구성원들로만 꾸려지는 모임이 코로나 사태로 오프라인 접촉이 불가능해지자 오프라인의 폐쇄성과 가장 근접한 밴드로 몰려오는 것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이번 달 미국 밴드의 신규 그룹 개설 숫자(일일 평균)는 전달보다 32% 증가했다. 특히 종교 그룹이 258% 늘었고, 가족 그룹도 104.8% 급증했다. 종교와 가족 그룹의 이용자 수도 각각 전달보다 172.6%와 62% 증가했다. 이런 신규 그룹은 개설과 동시에 한 번에 많게는 수십~수백 명의 신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 6개월 내 천만 이용자 확보해야 지속 성장
밴드는 소속 그룹 안에서는 채팅과 사진·동영상 공유는 물론이고 실시간 방송도 무제한으로 가능하다. 가족 그룹에 이런 기능은 영상 통화 못지않은 소통 효과가 있다. 학교는 교장이 원격으로 집에 있는 학생들에게 공지 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온라인 개학과 함께 초·중·고 교사들이 학급별 밴드방에서 학생 출석을 체크하거나, 부교재를 나눠주고 원격 수업을 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밴드는 동영상 공유와 실시간 방송 기능을 갖췄지만, 아직 미국 기업의 화상 회의나 학교에서의 실시간 원격 수업에선 약세다. 페이스북 라이브나 줌, 스카이프와 같은 기존 강자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종교·가족 그룹과 같은 개인 이용자 사이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해 원격 수업이나 재택근무 시장으로도 진입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에서 밴드의 성공 관건은 6월 이내 월간 이용자 수 1000만 돌파 여부다. 인구 2억 명이 넘는 미국에서 과거 일본에서 거둔 라인의 성공을 재현하려면 기회가 왔을 때 최단 기간 내 안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자(子)회사가 운영하는 모바일메신저 라인은 현재 일본에서 국내 카카오톡과 같은 독과점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2011년 초에는 무명(無名)에 가까웠다. 그해 3월 후쿠시마 대지진이 터졌고, 11월까지 단숨에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지인의 안부를 가장 쉽게 물어볼 수 있는 최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